“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만한 주식은 무얼까요?” 투자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받게 되는 이 질문에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우량 주식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모르겠다고 솔직히 답변할 사람도 있을 터이다. 반면에 “그런 주식은 없다.”라고 매몰차게 이야기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으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단기간의 시세 차익을 노리는 단기短期 투자가는 아니다.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 장기長期 투자가다. 단지 장기 투자의 대상으로 어떤 특정 기업을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주관적인 개념과 정보를 배제하고, 여러 종목들을 기계적으로 매수, 매도하는 ‘시스템’에 장기 투자하는 시스템 투자가다.

 

투자가들 사이에는 무용담이 많다. 어떤 주식을 오랜 세월 묻어 두었더니 황금알이 되었다는 내용들인데 나 역시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워렌 버핏과 같은 거부라면 몰라도 일반 투자가가 기업의 미래만 믿고 특정 종목에 비중 높은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아무리 우량 기업이라도 한 번의 판단 착오로 몰락해버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설사 100년의 역사를 이어간들 시대 흐름에 밀려 수익이 떨어질 경우 주식의 가치는 오히려 낮아진다.

 

적립식 펀드의 등장으로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장기 투자의 개념이 자리 잡힌 것이다. 나는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주식 투자를 패가망신의 투기로 여겼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하루 종일 붙어 앉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식 투자의 어두운 면에 빛을 밝혀준 것이 바로 펀드다. 개인이 HTS에 매달리지 않고도 장기간에 걸쳐 주식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펀드 투자는 특정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가 아니다. 펀드는 가장 원초적인 시스템 투자다. 어떤 원칙에 따라 매수, 매도하는 펀드매니저의 투자 시스템에 투자하는 것이 펀드라는 말이다. 이처럼 펀드는 시스템 투자법의 문을 열어 주었다. 현재 대중이 펀드를 투기로 여기지 않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있음은 펀드가 특정 기업에만 투자금을 묻어 두지 않고, 시스템에 따라 투자하는 만큼 그 안정성을 믿어서다.

 

그러나 시스템 투자로서의 펀드에는 한계가 있다. 단기 실적에도 신경 써야 하는 펀드매니저의 딜레마 때문이다. 펀드의 단기 실적에 따라 표류하는 일반 투자가를 계속 붙잡기 위해 시스템에서 벗어나 모험을 부리고픈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시스템의 틀이 부서지므로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시스템 투자의 온전한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장기 투자가는 펀드와 같은 소극적인 시스템 투자보다 적극적인 시스템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자기 스스로 펀드매니저가 되어 개인 펀드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을 시스템으로 삼을 지부터 결정해야 하며 일단 시스템을 설정하면 그 원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주식을 매수, 매도해야 한다. 이처럼 시스템 투자법의 핵심은 주관적으로 어떤 특정 종목을 매수해서 단기 내지 장기 보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종목을 매수, 매도하는 시스템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시스템의 중요성은 은행 객장에서 바로 확인된다. 순번 대기 시스템이 없던 시절에 객장의 무질서를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은행 업무 모두가 시스템화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ATM 기계 앞에서는 무질서를 경험하고 있다. 어느 줄에 서야 빨리 돈을 입, 출금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고민한 보람대로 자기 차례가 빨리 돌아오면 행운이지만 예상과 달리 다른 줄보다 지체되면 조급하다. ATM 기계마다 줄지어 서지 않고, 모든 대기자가 한 줄로 선 다음 ATM 기계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한 사람씩 이용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그러한 고민과 조급은 없어질 것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주관적인 분석과 정보에 따르지 않고 원칙에 의해 기계적으로 거래하는 투자 시스템이 중요하다. 시스템이 앞서 예를 든 마음의 고민과 조급을 없애주기 때문이니 시스템은 장기 투자의 핵심 덕목인 부동심不動心을 만들어 준다. 부동심을 통한 마음의 안정감... 이것이 바로 시스템 투자가 부富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다. 은행 ATM 기계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차례가 빨리 오기를 조급하게 바란다. 그러나 어느 기계의 줄이 빨리 줄어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모두 한 줄로 기다리는 시스템이 합리적이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주식 시장을 이기려는 요행에서 어느 ATM 앞에 줄 설지 고민하기보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한 줄로 서는 시스템에 따라 시장에 순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준다.

 

세상에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순 없다. 공부에 노력하는 학생보다 공부를 즐기는 학생의 성적이 우수하다. 투자도 이와 같아서 노력하는 투자가보다 투자 자체를 즐기는 사람의 수익이 높은 법이다. 투자를 지적知的인 유희로 삼으려면 시장 변동에 불안, 조급하지 않는 마음의 부동심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투자 부동심은 시스템 속에서만 가능하다. 시스템에 따라 기계적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데에는 투자가의 마음이 깃들 자리가 없다. 손해에 따른 불안, 초조뿐만 아니라 수익을 통한 기쁨과 환희의 마음도 붙지 않는다. 이처럼 아무 마음이 붙지 않고 순수하게 투자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져야 돈이 쌓인다. 마치 진공眞空에 공기가 빨려들 듯이 말이다. ‘시크릿’이라는 책에서는 부富를 바라는 마음이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해서 실제 부자가 되도록 만든다고 강조하는데 사실 투자에 있어서 바라는 그 마음마저 없어야 돈이 더 크고 빨리 끌어당겨진다.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어떤 투자 원칙을 시스템으로 삼을지 말이다. 그런데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 것은 투자 시스템으로 삼을 원칙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답이 많아서다. 성공한 펀드매니저라면 누구나 나름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까닭에 그만큼 원칙은 다양하다.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를 취하면 된다. 이미 소개되어 있는 다양한 투자 원칙 가운데 하나를 골라 나 개인의 투자 시스템으로 만들면 된다. 내 경우는 2가지 시스템으로 각각의 개인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조엘 그린블란트 교수의 ‘마법 공식’을 시스템으로 삼은 펀드이고, 나머지 하나는 ‘옥용 밸류’라는 명칭으로 내가 만든 원칙에 따라 시스템화된 펀드다. 장기적으로 어느 펀드의 수익률이 높을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지적 유희다. 투자의 지적 유희를 즐기게 되면 수익 변동에 마음 흔들리는 법이 없으니 이것이 곧 부富를 창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