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동갑내기 부부는 7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지 7년이 된 친구 같은 부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하며 내 친구, 네 친구 할 것 없이 격의 없이 지낸 덕에 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복작복작. 때문에 집주인이 개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린 것은 사람들이 편히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이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보이는 베란다 확장면이 바로 이런 집주인의 바람을 실현시킨 공간. 베란다를 확장한 곳에 여러 명이 모일 수 있는 6인용 식탁을 놓아두고 다이닝 룸처럼 활용했는데, 다른 아파트에 비해 유독 베란다가 넓은 구조라 하나의 공간처럼 활용이 가능했다. 베란다 양 끝은 내력벽이라 벽을 완전히 허물 수가 없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공간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해 거실과 다이닝 룸의 경계가 되어주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창을 내다보면 중랑천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져, 무척이나 여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덕분에 다이닝 룸은 친구들이 왔을 때는 물론, 혼자 책을 읽을 때나 남편과 차를 한 잔 마실 때도 늘 머무르게 되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발상의 전환에 따른 공간 배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거실 레이아웃은 TV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본래는 지금 소파 자리에 아트월이 있었고, TV를 아트월 쪽에 걸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 라인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레이아웃을 따르면 멋진 중랑천의 풍경 대신 아파트 단지를 향한 뷰를 갖게 되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아트월을 뜯어내고 소파 위치를 반대로 옮겨, 소파에 앉아서도 탁 트인 중랑천이 시야에 들어오도록 레이아웃을 바꾸었다. 아파트를 둘레둘레 산책하다 보면 일제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TV들 속에서 혼자 반대쪽으로 향해 있는 집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데, 그러면 ‘아, 저기 우리 집이군’ 하며 뿌듯한 마음이 든단다.
내추럴 콘셉트의 편안한 공간
거실 한쪽에 다이닝 룸을 만들었기 때문에 주방의 역할은 오로지 요리하고 부부가 간단히 식사를 즐기는 정도면 충분했다. 때문에 주방은 ㄴ자 구조로 동선 효율성을 높이고 작은 아일랜드 식탁만 두어 최대한 간소하게 꾸몄다. 집주인이 원한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무 색을 주조로 한 내추럴 콘셉트. 이에 디자이너는 메탈이나 타일처럼 모던한 느낌이 나는 매끈하고 차가운 마감재보다는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내는 나무 소재를 주로 사용했다. 전체적인 컬러 역시 나무 질감과 어울리는 브라운, 베이지, 아이보리 등 비슷한 계열을 더하는 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타일 같은 마감재를 쓰더라도 빛 바랜 듯한 브라운, 빈티지한 느낌의 진초록 등 톤 다운되고 빈티지한 색을 써 분위기를 맞추었다.
아이를 위한 개조 포인트
또 하나 개조를 하면서 신경 쓴 부분은 두 돌 지난 아들 태희가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가구는 붙박이로 만들고 두는 가구 수를 최소로 해 공간을 넓게 활용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평형대에 비해 시원해 보이는 느낌. 처음 아이방 사진을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각 대륙의 이름과 동물들을 그린 세계지도 일러스트 벽지였는데, 이는 엄마가 열심히 품을 들여 찾아낸 것이라고 한다. 동물을 너무도 좋아하는 태희의 취향을 고려한 선택. 수입 벽지는 너무 비싸고, 국산 벽지는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이 벽지를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쳤다고 한다. 보통 빈티지한 느낌의 세계지도 벽지는 보았지만 한글로 쓰여진 디자인은 처음. 벽 사이즈를 알면 크기에 딱 맞게 제작해주므로 원하는 모양과 크기만 알고 있다면 직접 시공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아이디어 돋보이는 가벽 플레이
중문이 따로 없는 30평대 아파트는 대부분 현관으로 들어서면 집 안이 한눈에 보이는 구조다. 이 집 역시 마찬가지로, 집주인은 누구든 문만 열면 집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현관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던 터라 집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화장실 문! 때문에 디자이너는 현관 입구 정면에 신발장과 ㄱ자로 이어지도록 가벽을 세우고 옆으로 중문을 달아 현관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공간이 창가가 되도록 방향을 바꾸어 주었다.
침실 한쪽에 만든 드레스 룸 역시 이런 가벽을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 침실이 그리 넓지 않은 편이라 거대한 여닫이 문 옷장을 두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는데, 침대 뒤쪽으로 가벽을 세워 드레스 룸을 만들었더니 정면에서 보면 감쪽같이 드레스 룸이 감추어지고, 드나들며 옷을 고르고 입기에는 편한 실용적인 공간이 완성되었다.
디테일과 컬러의 힘
침실은 마치 유럽의 어느 호텔과 같이 로맨틱한 분위기. 가만히 들여다보면 침대 외에는 별다른 가구도 없는데(심지어 화장대도 화장실 옆에 빌트인되어 있다) 무척 여러 가지 가구가 화려하게 스타일링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8각 모양으로 디자인해 짜 맞춘 창문의 프레임과 화이트vs티파니 블루 컬러의 완벽한 컬러 조합이 이루어낸 결과다. 아이방 역시 마찬가지. 말간 물색을 띠는 벽지의 세련된 컬러와 블라인드의 연노랑색이 어우러져 공간을 더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어준다. 이렇듯 각 공간마다 어우러진 컬러 매치는 색상 선택이 공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