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네살... 여자친구와 8년 넘게 사귀었습니다. 스물 여덟살까지 공부를 했는데 당시 여자친구 어머니께서 "직업도 없는 거 그런 거 데려오면 안된다."라는 말을 전화통화로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시 제 상황 속에서 그 말이 얼마나 아프고, 가슴을 후벼팠던지 글자 하나하나에 말투, 억양까지 또박또박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 집에서 중간중간 선을 보라고도 하셨는데 여자친구가 한사코 거절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제 문제로 싸우기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스물아홉 되던 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공부를 때려치고,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 되어, 지방에 30평되는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이때부터 여자친구 집에서 생각이 조금씩 바뀐 것 같은데 저를 만나는 것을 더 이상 뭐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인사 오라는 여자친구 부모님의 말이 있어 처음 인사를 드렸구요. 1년 동안 여섯번 정도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갈 때 마다 여자친구의 동네친구들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누구는 서울 부잣집에 시집을 갔고, 누구 신랑은 삼성전자 다니고, 누구 신랑은 의사고...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어디가서 자랑할 것도 없어서 아무 말 않고, 듣고만 있다." "우리가 자랑할게 뭐가 있느냐?" 격앙된 말투는 아니고, 어색하게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솔직히 또 아팠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리가 저를 불편하고 아프게 한다는 것을요. 여자친구이 시골이라 한번 가면 1박 2일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불편하고, 가시방석입니다. 너무 가기싫은데 여자친구에게 말을 못하겠네요. 여자친구 집에 가기로 한 날이면 일주일 전부터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자기 가족에 대해서 뭐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제가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여자친구에게 하는 게 좋을까요? 괜한 싸움만 될까요? 

[출처 : 사랑과 전쟁]